〇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라는 말이 있다. 이미 일을 그르친 뒤에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한자
성어로는 망양보뢰(亡羊補牢)라고 하여 소 대신 양을 빌어다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치다’라는 의미의 어휘가 있다. 우리와 달리 중국에
서는 소보다 양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하여간 소가 되었든 양이 되었든 잃어버린 다음에 외양간을 고친다면 이미
일을 그르친 뒤가 됨은 어느 경우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위 속담이나 망양보뢰는 같은 데서 출발한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뉘앙스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망양보뢰는 때늦은
데 대한 후회감보다 오히려 새로운 대비에 무게 중심을 둠으로써 보다 발전적 측면을 보여준다. 양을 잃은 데 대해 자책하는 것을 넘어
서 우리를 고친다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서, 망양보뢰는 잘못한 뒤라도 제때에 보완을 하면 결코 늦은 것이 아님을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망양수뢰(亡羊修牢), 또는 망양고뢰(亡羊固牢)라고도 한다. 비록 소나 양을 잃은 아쉬움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해 미래를 버
려둘 수는 없다. 외양간이나 우리는 소나 양을 잃은 뒤일지라도 고쳐야 하고 계속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나마 소나 양을 잃은 쓰
라린 경험을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며칠 전 용산 한강로에서 철거민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여럿의 귀중한 생명을 잃는 참사가 빚어졌다. 원인과 경과가 좀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어처구니없는 불행한 현실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이러한 일이 서울 한 복판에서
백주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과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황당한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상투적인 말을 언제까지나 되 뇌이고 만 있을 것인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는 만시지탄의 혐의는 있지만 차제에 생명 존중 사상에 대한 보다 철저한 고민과 이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대한 관
계 당국의 적절한 후속 조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2009년 1월 22일 용두팔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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