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도 효자는 알아보아
명(明)나라 때 복건(福建) 지방에 장현(莊賢)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도적떼가 그가 사는 마을을 습격하였다. 장현은 경황 중에 계모를 업고 힘껏 도망쳤으나 결국 도적떼에게 둘 다 잡히고 말았다.
장현은 도적들에게 자기야 어떻게 하든 제발 어머니만큼은 다치게 하지 말 것을 간구하였다. 그러자 도둑들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그 어머니 뿐 아니라 그도 함께 풀어주었다고 한다.
금권만능주의가 판을 친다. 자본주의 체제가 극대화된 신자유경제 체제에서 사람들은 이(利)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언론 매체에서는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을 앞 다투어 다루는 게 예사이다. 심지어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세인의 주목을 끌며 사람들 간에 흔한 인사가 된 지도 오래이다. 각 나라에서도 뒤질세라 건듯하면 국익(國益)을 내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의(義)란 한낱 쓰레기 더미 위나 박물관에 가면 있으려나 싶게 그저 이권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 효나 충이라고 하는 관념은 낡은 윤리 책을 장식하는 데 불과할 뿐 이만이 지상 과제인양 운위되며 마치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듯 혈안이 된다. 생존 투쟁을 하며 거리에 나선 사람들에게 한 점 동정보다 교통이 막히는 게 더 문제인 우리는 이제 서로 남인가? 그러한 일이 내게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그저 불편한 타자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어제까지 같은 동료였던 사람들이 대치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그저 서글플 뿐이다.
맹자는 말한다. ‘하필 이(利)를 말하는가?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이다.’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도적들에게도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구하려는 효자 앞에서는 스스로 인간임을 거부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이(利)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상존해야 비로소 우리는 다른 동물과 분명 다른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의를 이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에 비례하여 우리는 보다 인간다움을 누리며 멋진 생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2009년 6월 30일 용두팔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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