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안다[천지신지(天知神知)]
요즈음 내로라하는 유수한 제약회사들이 의사들에게 리베이트(rebate)를 준 것이 사회 이슈화되고 있다. 그러면 리베이트란 무엇인가? 리베이트를 사전적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 판매자가 지급받은 대금의 일부를 사례금이나 보상금의 형식으로 지급인에게 되돌려 주는 일. 또는 그런 돈 >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있을 수도 있는 일로 보인다. 그런데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흔히 리베이트라 하면 ‘뇌물’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어떤 의사가 제약회사 직원에게 리베이트를 받고 환자에게 최선의 약이 아닌 그 보다 질이 떨어지는 것을 구입하여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의술이 곧 인술(仁術)이라고 하는 본령에서 크게 벗어나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상도덕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일 뿐 아니라 환자들의 의사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불신 풍조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만약 그러한 일들이 사실이라면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제약회사나 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자격을 상실할 뿐 아니라 또 하나의 범죄 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뭔가 잘 해보려다 실수하는 것이야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지만 고의성을 띠고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농단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옛 경전인 서경(書經)에서 고의성을 띤 범죄는 그것이 비록 작은 일이라 해도 엄하게 처벌해야 함을 역설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상당수의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것도 관행이라며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바보라고 하거나 그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재수가 없어서일 뿐이라고 대충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행이라 해서 적당히 얼버무려서 될 일이 아니다. 이는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해 인술을 몸소 베푼 많은 분들에 대한 명백한 도전행위이며 인간 존중에 대한 반역이다.
뇌물과 관련하여 여기 청렴한 인물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 후한(後漢) 때에 양진(楊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동래 태수(東萊太守)에 제수되어 창읍(昌邑)이라는 곳을 지날 당시의 일이다. 마침 그곳에 현령으로 근무하고 있던 왕밀(王密)이란 사람이 양진을 찾아보았다. 날이 저물자 왕밀이 10금(金)을 은근히 양진에게 바치면서 말하기를,
“어두운 밤이라 알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사실 왕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둘 만 있는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주고받으면 그 누가 알겠는가? 왕밀은 야음을 틈타 양진에게 뇌물을 씀으로서 자신의 과오를 적당히 넘겨보려는 수작을 건 셈이었다. 그러나 천만 뜻밖에도 양진의 대답은 매몰차기 그지없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며,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 터에, 어찌 알 사람이 없다고 하시오?[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천지신지아지자지 하위무지)]”
라 하며 왕밀이 주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물리쳤던 것이다. 이에 왕밀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못한 채 부끄러워하며 물러간 것은 물론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 일부러 상대방에게 연락을 해서 돈 내놓으라고 하는 판에 상대방이 자진해서 가져다 바치는 것을 안 받을 바보가 어디 있느냐고? 무슨 자리에 있으면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면 바보라고? 그러다 그들이 말하듯 재수 없어 걸리면 대가성이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으로 여기기 일쑤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공무원들의 봉급이라는 게 정해진 게 있고 만약 그것만을 받는다면 그렇게 잘 살 수 없다고 여겨지는 데 그 수입 이상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 스폰서 검사가 어떻고 하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면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하는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지만 그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엄한 잣대를 들이대던 사람들이 어느 날 그 보다 더 큰 불법적 행위를 서슴없이 행한 사실이 밝혀질 때 뭐라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아는 것은 차치하고 나와 네가 알고 있는 부끄러운 행위를 근절하는 게 급선무다. 법률가가 법을 안 지키고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인술에 위배되는 행위를 서슴없이 행한다면 어떻게 이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몸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상호간에 불신이 없게 하는 치료가 먼저가 아닐까 싶다. 결국 건강한 사회는 너와 나 할 것 없이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건강과 행복》 2012년 11월호(단국대학교 병원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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