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화(雪中花)
눈 속에 피어있는 꽃을 보자니 불현듯 조선시대 초기의 설중매(雪中梅)라는 기생 이름이 생각난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 정확성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하여간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조정 대신들이 잔치하는 자리에 설중매도 불려온 기생 중 하나였다. 어느 대신 한 명이 설중매에게 “그대는 동가식 서가숙(東家食西家宿)한다니 오늘은 이 늙은이와 한번 즐겨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며 희롱을 했다. ‘동가식 서가숙’이란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는 뜻으로 기생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에 설중매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한다.
“좋습니다. 저는 동가숙 서가숙하는 처지이고 대감께서는 전날 왕씨를 섬기다가 오늘날 이씨를 섬기니 저와 다를 바 뭐가 있겠습니가?”
졸지에 좌중은 분위기가 숙연해진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역성혁명이라고 해서 새 조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들 마음 한 구석에는 고려 조정을 뒤엎고 조선 조정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도 ‘열녀는 지아비를 바꾸지 않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한 때는 민주화 투쟁을 한다고 앞장 선 사람들이 이제는 거꾸로 민주화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한술 더 떠 과거 어두운 시대로 되돌아가는 데 앞장 서는 것을 보게 되니 어찌 설중매의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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