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페이스북의 글

소통과 불통의 차이

지평견문 2016. 8. 3. 08:54


퇴근하여 후암동에 있는 집에 가려면 학교에서 8100번 버스를 타고 한남동에서 하차하여 402번 버스를 바꾸어 타고 남산 순환로를 통해 귀가하게 된다.

며칠 전이다. 한남동에서 집에 가는 차를 타려고 전광판을 보았더니 웬일인지 402번 버스가 오려면 무려 17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

기 위해 수진본 맹자를 꺼내들고 읽으려는데 마침 400번 버스가 앞에 다가섰다. 400번이라면 후암시장 앞에서 가끔 보던 차가 아닌가? 에라 잘 되었다

싶어 기사 분에게 후암동 가는 버스냐고 물었다. 기사 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조금 돌아간다.’고 말하였다.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402번 버스를 맥없이 기다리느니 조금 도는 게 뭐 대수인가 싶어 얼른 승차하였다. 조금 돈다는 것은 어차피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한 조금 돈다는 것은 버스가 이태원을 지나 삼각지에서 우회전하여 남영동을 경유하여 용고 앞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웬걸. 버스가 이태원 길로 가더니 보광동 쪽으로 홱 돌아섰다. 그때서야 아뿔싸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더 지켜보기로 했다.

는 한강을 조금 끼고 돌다가는 국립박물관, 효창동, 숙대 앞 등을 거쳐 비로소 남영동, 후암동으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나는 분명 기사 분과 나름 소통했는데 내용은 정작 그게 아니었다. 기사 분께서는 분명 조금 돈다.’고 했고, 나 역시 조금 돈다.’고 여기며 별 것 아니라

고 여겼다. 그런데 결과는 왠지 조금보다는 많이돈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소통과 불통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버스 노선에 대해 꼼꼼히 살

펴보지 못한 채 지레 짐작으로 나만의 노선을 생각했고, 기사 분의 조금이라는 표현은 조금 더 생각하여 많이도는 쪽으로 이야기해도 될 법한 것이었

. 그러나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서로 소통했다고 여겼고, 그 소통은 각자의 영역에서 그렇게 여겼을 뿐 소통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비슷한 경험은 지난 일요일 서울 둘레 길을 걸으면서도 또 한 번 느껴야 했다. 어느 분이 나의 모습을 보고 둘레길을 걷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랬더니 그는 어디까지는 경관이 좋아 할 만한데 어디부터 어디까지는 삭막하다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나는 그래도 한 번 다 둘러보는 게 의미 있지 않겠

느냐고 답변하였다. 그런데 가면서 생각해보니까 그 분이 생각한 둘레길은 북한산 둘레길이고 내가 당시 진행하고 있는 둘레길 산책은 서울 둘레 길이

었다. 서울 둘레길 8코스는 북한산 둘레 길과 겹치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또 다른 말들을 하면서 나름 소통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

이다.

 

이렇듯 내가 최근에 겪은 일련의 양 사건(?)은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처럼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며 나름대로 소통하고

있다고 여기는데 과연 그게 모두 제대로 된 소통일까?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한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

면서 서로 소통한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고 여길 때 오해와 편견의 감정들을 토로하게 되는 것은 아닐

는지. 이렇듯 소통한다고 여겨지는 가운데도 그렇지 않은 면이 적지 않은 데 하물며 서로 소통하고 있지 않다고 여길 만한 일들은 더 말해 무엇 하랴.

어쨌거나 그런 가운데도 우리는 서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