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의(義)를 이롭게 여겨야
세상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날이면 날마다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 중에는 천재지변처럼 불가피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위적인 일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사적인 일을 뒤로 미루고 공적인 일을 먼저 수행하는 것을 선공후사(先公後私)라고 한다면 배공영사(背公營私)처럼 공적인 일이 뒷전에 밀리기도 한다. 배공영사라고 하면 공적인 일을 무시하고 사적인 일을 도모함을 이른다. 법을 어기고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것 또한 배공영사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배공향사(背公向私)라고 해도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다.
선공후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일은 팽개치고 사적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되는 자가 많은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들은 선공후사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테지만 배공영사라는 말을 들은 경우는 그리 흔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잘 아는 선공후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배공영사를 행하는 데는 어려운 줄도 모른 채 그처럼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양혜왕이 맹자를 처음 만나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진 장면을 사마천이 보고는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누구나 의(義)보다는 이(利)를 추구하는 마음을 우선하다보니 그렇듯 이에 치우쳐 의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묘하게도 의를 추구하면 생각지 못하게 이가 따르지만 이를 추종하다보면 오히려 이를 잃게 됨도 엄연한 사실이다. 의를 행함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이 체현되기 전에는 배공영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을 보라. 대개 사단이 일어나는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떠나 대개 이권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를 보면 의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오늘날도 어김없이 중요한 삶의 지표로 남아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