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화병도인이라 불러다오
청대(淸代)의 인물인 양장거(梁章鋸)가 쓴 《칭위록(稱謂錄)》이라는 책에 거지를 일컫는 말로 화병도인(花餠道人)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여기서 도인은 도를 깨달은 사람을 이르는 말인지, 아니면 길거리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될 듯싶지 않고 다만 거지를 화병도인이라 부르게 된 유래가 흥미롭다.
오조(五朝 : 아마 五代를 이르는 듯) 천주(泉州)에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구걸을 하여 돈을 얻으면 그것을 가지고 모두 화병(花餠)을 사서 먹었다고 한다. 화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대강 한자 뜻으로 새겨보면 꽃모양을 한 떡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아이들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화병도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병도인이라 하면 걸인, 또는 거지를 일컫는 말로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소화자를 일컫는 말이 탄생한 셈이다.
그냥 거지라고 이르기보다는 그래도 도인(道人)이라는 말을 붙여 말하면 뭔가 달라 보인다. 내용은 같은 거지를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말을 쓰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청소부라고 하는 것보다 환경미화원이라고 부를 때 보다 다른 느낌을 받는 것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럴 바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상대방도 듣기 좋게 말하는 것이 더 좋을 성 싶다. 뭔가 무시하거나 지저분하거나 불쌍함을 연상시키는 거지라는 표현보다 화병도인이라 불러서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들도 분명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일 시 분명하니 그들을 거리의 악사를 떠올리듯 거리의 철학자나 도사 정도로 여겨봄은 어떨까? 아마 그 중에는 분명 거기에 걸 맞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요즈음은 코미디 프로에 꽃거지가 등장했다고 한다. 거지라고 다 같은 거지가 아닌 모양인데 이를 앞의 방식으로 구태여 고친도면 화도인(花道人)쯤 되려나? 그래서 화도인에게 화병도인에 대해 아는지 물어볼 법도 하지만 500원이라도 내랄까봐 그럴 수도 없다. 차라리 궁금한 채 지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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