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처럼 공부를 게을리 한 사람들은 종합영어를 공부한답시고 늘 명사편만 공부하다가 누차 중단하기 십상이다. 처음에 마음먹고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시작했다가는 중도에 그만두고 나중에 다시 또 하겠다고 하고 명사 편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또 그만두기를 밥 먹듯 하다 보니 그 부분만 손때가 묻어 시커멓게 될 뿐 진전이 없다. 차라리 다음에 시작할 때는 먼저 했던 부분을 제외하고 시작하면 알건 모르건 그래도 끝까지 한번은 보련만 그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이 논어(論語)이다. 영어 공부할 때와 마찬가지로 논어하면 대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부분은 대개 안다. 그것이 논어의 첫머리에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어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 〈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까지 알면 조금 나은 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세상에 절실히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사람들은 누가 보는 앞에서는 다 괜찮아 보이는데 혼자일 때는 법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마음대로 어기기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양심 냉장고라도 준다고 하며 감시라도 하면 이를 의식해 교통 법규를 지키다가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를 무시하기 일쑤이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가 지나가지 않는데 빨간 불을 보고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고지식하다거나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아 보이지만 거기에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내 앞에 와서 남의 욕을 실컷 하는 사람이 다른 데 가서 내 욕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새가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울듯이 어쩌면 자신의 입과 몸으로 사람들은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가운데서 하는 일들이 자신도 모르게 말이나 얼굴에 재현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이 보고 있지 않고 알아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원칙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러 공자는 군자라 했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선비였을 것이고,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멋진 신사가 될 터이다. 반면 소인배들은 한가한 가운데 하지 않는 일이 없다가 그런 군자들을 만나면 겉을 꾸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이미 군자들은 소인배의 간담을 다 들여다보면서 다만 굳이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서 가까이 하기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단지 연대나 외는 학문이 아니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건 미움을 받건 그 원인은 당사자가 싹틔운 것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군자요,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 소인배가 될 것이다. 일시적으로 군자가 핍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보이지 않는 성실함은 드러난 가식이 끝내 이길 수 없다. 당대에 알아주지 않으면 후대에라도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그렇지 못한 데는 덕이 부족하고 공부가 적은 것이 아닐까 늘 반성하며 성실히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날로 쌓이는 것이 있고 그 누적된 결과가 자신의 인격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뿐이다. 또 그런 사람들은 결코 외롭지 않은 법이니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좋은 가족, 스승, 벗들이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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