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기
옹치(雍齒)는 한(漢)나라 초기의 패(沛) 땅 사람이다. 곧 그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고향 사람으로 한 고조를 따라 군사를 일으켰다. 그가 비록 유방을 따라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웠으나 일찍이 유방을 군색하고 욕되게 하여 유방으로부터 몹시 미움을 받았다.
유방이 황제로 즉위함에 미쳐 여러 장수들이 제후에 봉해지지 않자 유방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러자 유방은 자기가 가장 미워하는 옹치를 먼저 십방후(什邡侯)에 봉하였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하기를, “(유방이 미워하는) 옹치도 오히려 제후가 되는 판이니 우리들은 걱정할 게 없다.”라고 하였다. 유방이 제일 미워하는 옹치를 제후에 임명한 것은 바로 여러 장수들의 불만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을 쓴 것인 데 그 꾀는 바로 유방의 오른팔 노릇을 했던 장량(張良)이 건의한 것이라 한다.
한 고조 유방이 옹치를 제후에 봉한 것을 일러 옹치봉후(雍齒封侯)라고 한다. 당시는 여러 장수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기용했던 것이지만 뒤에 이 말은 오랫동안 맺힌 원한관계, 즉 숙원(宿怨)을 개의치 않는다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를 건의한 장량의 계책도 기묘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수하의 불만을 무마한 유방의 아량 또한 자못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사는 자기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대의를 위해 어쩔 수없이 시의를 따라야할 경우도 있는 법이다. 내 입맛에만 맞는 코드 인사만을 고집하다가는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점점 어렵게 된다. 내 사람만을 챙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대국적 견지에서 국민들의 의향이 어디에 있는 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서인 정권에서 남인 계통의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삼았던 데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평생각 > 정의(正義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가 무슨 잘못이기에 (0) | 2013.03.26 |
---|---|
정숭의 신발 끄는 소리 (0) | 2013.03.25 |
그저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0) | 2013.03.23 |
활쏘기와 페어플레이 정신 (0) | 2013.03.22 |
농단(壟斷) (0) | 201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