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정숭의 신발 끄는 소리
때는 중국 한(漢)나라. 가죽신을 끄는 소리가 궁중에 들려온다. 황제인 애제(哀帝)는 아연 긴장을 하며 옷깃을 여미고 있다.
분명 상서 복야(尙書僕射) 정숭(鄭崇)이 들어오고 있음을 그는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정숭은 조회 때마다 예의 그 가죽신을 끌며 들어와 곧잘 직간(直諫)을 하곤 했다. 그러자 애제는 이제 그의 신발 소리만 들
어도 정숭이 오는 것을 이내 알아차리고 냉큼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된 것이다. 정숭의 신발이라고 해서 정리(鄭履)라고 하
는 말은 이 때문에 청렴하고 정직하며 직간을 잘 하는 대신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제왕의 힘이 무소불위로 행해지던 시절, 직간을 잘못 했다간 죽음을 자초하는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이 남의
목 인양 아예 드러내놓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간신(諫臣)의 이야기를 잘 듣는 제왕들이 소위 성공한 제왕으로
청사에 길이 빛을 발하게 된다. 반면에 간신을 죽이거나 멀리 한 제왕일수록 폭군이 되어 자신을 보존치 못함은 물론 건듯하면 나
라마저 들어먹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간하는 수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큰일이다. 그저 위만 바라보고 지당하다거나 예스만을 읊어대는 부하라면 부리
기는 좋을지 몰라도 도움 되는 게 적다. 마땅히 정리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지도자라면 다소 겁은 나겠지만 정리(鄭履)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정리 소리를 오랫동안 듣지 않다 보면 물러가라는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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