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함
“군자(君子)는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을 천하게 여기며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뒤에 생각한다. 그러한즉 백성들이 사양하게 된다.”
《예기(禮記)》 방기(坊記)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선인후기(先人後己)라고 한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중 사양지심(辭讓之心)이 걸맞을지 모르겠다. 져주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그러다가 손해만 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양보는 나의 양보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저도 또한 나처럼 양보를 하게 되니 서로 사양하면서 양자 간의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염소들이 서로 다투다 물에 떨어지는 장면, 하나가 양보하면서 둘 다 다리를 건너가는 모습, 그런 것들을 우리는 이미 동화의 세계에서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오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그러한 일들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아니 잊은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그것이 옳다고 하며 힘주어 훈계하는 데는 그리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거리에 나서는 순간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밀고 들어간다.
우리는 양보가 미덕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것을 이론에서만 필요로 할 뿐 현실에 닥쳤을 때는 먼 옛날의 동화 속 이야기로만 기억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얼마든지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남을 꾸짖을 때는 준절하다. 저쪽의 불륜이 내게는 하나의 로맨스일 뿐이다. 그 말이 맞기는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말은 늘 고상한 데 두고 행동은 늘 현실에 충실하다. 내가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냐는 통속에 나를 묻어 버리고 숨어버리는 장면은 어느 때고 끝나기 어렵다. 내가 그 고리를 끊으려고 하지 않는 한 영원히 그것은 인류의 숙제로 남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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