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내가 분명 보았는데
조석윤(趙錫胤 : 1605∼1654)은 선조 대에 태어나 효종 대까지 활동한 조선 후기의 인물이다. 본관은 배천(白川)으로 자는 윤지(胤之), 호는 낙정재(樂靜齋)다. 대사간 정호(廷虎)의 아들이니 명문가 자제임을 알 수 있다. 문장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계곡 장유(張維)와 척화파의 상징적 인물인 청음 김상헌(金尙憲)에게 배웠다. 문과에 장원 급제를 하였고, 병자호란 당시 척화 주장을 내세웠으나 척화인의 죄적(罪籍)에 들지 못함을 여러 차례 상소하여 끝내 파직을 자초할 정도로 강직성을 보였다. 대사간 · 대사헌을 여러 차례 역임하고, 대사성과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그는 청백리에도 선발될 정도로 청렴한 관리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신중하였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교외에 살았던 관계로 한강을 자주 건너다니곤 하였는데, 어느 날인가 풍파가 매우 거세게 일어 건너갈 사람들이 많이 밀렸던 모양이다. 당시 나룻배는 짐을 무겁게 잔뜩 실어 강을 반쯤 건너다가 그만 배가 침몰되고 말았다.
마침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언덕 위에서 그가 바로 그 배에 타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친구는 조석윤도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빠져죽었으리라 여기고 그의 아버지를 찾아뵙고 그러한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정작 그의 아버지는 친구의 말을 믿지 않으며 말하기를, “우리 아이는 함부로 건널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는 그 친구의 심정이야 조석윤의 아버지가 얼마나 딱하고 답답했을 것인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과연 조석윤의 아버지 말대로 조금 뒤에 조석윤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오히려 그 친구가 놀랄 차례였다. 그에게 있어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눈으로 분명히 그가 배를 타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얼마 후 그 배는 강 가운데서 침몰하여 모두 죽게 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데 저승에 갔어야 할 친구가 무슨 일이냐는 듯 눈앞에 분명 나타나 있지 않은가. 그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자기의 눈을 의심해보았지만 조석윤이 자기 앞에 뚜렷이 보이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석윤이 그의 친구가 보았듯 처음에 그 문제의 배를 탔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그 배가 아무래도 위태롭다고 여겨서 다시 내렸던 것이다. 그러다 인마(人馬)가 거의 드물 때를 기다린 후 비로소 강을 건너왔던 것이다. 그의 친구는 조석윤이 사고 난 배를 탄 것을 보았으나 그가 다시 배에서 내린 것은 보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익사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는 조석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데 한 치의 의심도 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그 경우를 당했어도 우리 또한 그 친구의 시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요즈음 어떤 코미디언의,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렇다. 직접 보지 않았으면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직접 눈으로 본 경우마저 이렇듯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설령 99%가 옳다하여도 확실하지 않은 남은 1% 때문이라도 우리는 함부로 남의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 2009년 8월 19일 용두팔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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